“차를 마시면 어머니의 사랑이 생각이 납니다.”

우리의 차문화는 깊다면 깊지만, 이론적인 연구가 부족해 이를 제대로 진단하는 다인이 드물다. 연재를 기획하면서 이달의 다인으로 류건집 심수연학회 회장을 찾은 이유다. 『한국차문화사 上 下』에서부터 『다부 주해』에 이르기까지 10여 권의 저서와 20여 편의 논문, 강연을 통해 한국의 차 문화 발전에 기여해 온 류건집 심수연학회 회장을 만났다.

류건집 심수연학회 회장, 전 원광대디지털대학 석좌교수, 경북 안동이 고향이다. 류 회장은 1995년 경전과 다서(茶書)에 관한 강의와 토론을 하는 심수연학회를 조직했고, 2014년에는 사단법인 다산연구소(이사장 박석무)에서 수여하는 다인상을 받았다. 청담동의 류 회장 자택을 찾아가니, 기자를 다실로 안내하면서 우전차 한 잔을 권했다.

“김 기자는 어떤 차를 좋아하나요. 이 차를 한 번 마셔 보세요. 향이나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통 어린 풀들을 뜯었을 때, 풀기를 맞으면 나는 냄새가 있어요. 이 냄새를 베린 냄새라고 하는데, 나는 이를 어떻게 말 하냐면 젖 유(乳)자를 써서 유향(乳香)이라고 해요. 혹시 김 기자 어머니 젖 먹고 자랐어요? 나는 처음 이 우전차를 마셨을 때, 처음 냄새가 어머니 가슴 생각이 났어요. 그야 말로 우리의 생명을 이어주는 영원한 생명의 원천, 그 포근한, 그 무한한 사랑이 그 향에 베어 나온 거에요.”

류 회장은 아끼는 차에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지는 의미를 부여했다. 류 회장은 공부하다보니 자신과 비슷한 느낌을 이규보가 송광화상에서 보내는 편지에서도 발견했다. 송광화상이 차 하나를 이규보에게 보내면서 차의 이름을 하나 지어 달라 부탁했는데, 이규보가 마셔보고 류 회장과 비슷한 느낌을 언급한 것이다. 이규보는 그 차에 젖먹이 유(孺)자를 써서 유차(孺茶) 라고 명명했다. 류 회장은 매년 4월 이면 이 유차를 마실 생각에 마음이 부푼다고 한다.

차에 대한 사랑의 시작, 시인 조지훈과의 교우

류 회장은 자신에게 차의 인연을 만들어 준 사람으로 조지훈 시인과 이가원 선생을 꼽았다.

특히 고향 선배였던 조 시인의 영향은 깊었다.

“당시 조지훈씨가 쓴 글 중에 ‘돌의 미학’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 자기가 일본 가서 유학 할 때, 그 곳에서 공부하다가 어떤 지인을 만나, 다회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새롭고 신비로운 체험이었던 거지요. 그런 체험을 돌의 미학에 썼습니다. 그래서 한 번 뵈러 갔었지요. 어느 날 조지훈 선생님을 만났는데,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 술 대신에 차를 주신 겁니다. ‘오늘 내가 감기에 걸려 못 마셔’, 그러면서 차 이야기를 장황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 때 기억이 깊게 남았어요.”라고 말했다.

우리 차문화의 변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에도 영향

류 회장은 우리 차문화가 일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로의 변화 과정을 예로 들었다. 송나라 때는 덩이차로서 말린 덩이를 갈아서 가루를 만든 후 물에 타서 함께 마신 차가 유행했다. 당시 송나라의 황제가 애용하던 용봉단차(龍鳳團茶, 송대에 유행하던 용봉모양이 그려진 방형의 차)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송나라에는 궁실에서 운영하는 대규모의 차밭 부원이 있었는데, 당시 이곳에만 차나무가 6만 주가 있었다고 한다. 송나라 때 차는 가루를 물에 타면 하얀 거품이 나왔는데, 거품이 하얗고 많을수록 고급차 대접을 받았다. 이 차의 색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검은 색 혹은 청색의 다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송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에서 청자가 유행한 이유다.

명나라 주원장의 평민 출신이어서 사치스런 송대의 문화를 싫어했고 부원도 폐쇄했다. 대신 그 역시 차를 좋아했던지라 중국 강소성 의흥(宜興) 근처에 있는 고저의 고저산에서 나는 자수차를 좋아했다. 자수차는 잎차의 종류였다. 명나라 때는 가루차 대신 잎차가 유행했고, 잎차의 색을 돋보이기 위해선 하얀 백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조선 시대에 백자가 사랑받았던 이유다. 차 문화가 변화하면서 도기 역시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류 회장은 조선의 선비 차의 기원에 대해, 고려 말의 성리학의 유입과 조선 초 사림파의 대두를 예로 들었다. 조선 성종 때,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1431~1492)이 개혁을 위해 사림파들을 대거 조정에 추천하면서, 조선의 선비 차문화는 중흥을 맡게 된다. 점필재의 후학들이 모두 다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류 교수는 이렇게 조선 전기의 차는 학맥을 통해서 이어 내려 왔다는 것을 강조했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통해서, 우리 차문화가 잠시나마 황폐화 되었지만, 그 당시에도 우리의 차는 매니아들을 통해서 전승되었다고 한다.

오피니언 리더에게 차란?

류 회장과의 차이야기는 자연스레 작금의 우리의 차문화 이야기로 옮겨갔다. 무엇보다 우리 차를 외면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모습에 대한 한탄도 있었다. 오피니언 리더가 차를 가까이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물으니, 류 회장의 인문학의 정의부터 이야기 했다. 인문학에 대한 류 회장의 정의는 새로우면서도 정곡을 찌른다. 류 회장은 “인간의 다른 이름은 욕망입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간택하는 마음, 즉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인간의 존재의 모습인 거죠.”라고 하면서, “이 마음이 남과 경쟁하게 만들고 무한경쟁으로 내몹니다. 문제는 그것을 그칠 줄 모른다는 거죠. 자신이 (욕망이란) 덫에 걸려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게 바로 인문학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어떻게 탐심을 끊어 마음을 비울 수 있는가? 여기서 류 회장은 차를 권했다. 욕심이 끊어지지 않을 때는 차를 마시라! 거칠게 압축하자면 ‘차를 마시면 마음이 비워지고, 차의 의지하면 나의 가야할 길이 보인다’는 게 류 회장의 다도론(茶道論)이었다.

국산과 외래종을 개량한 신품종으로 대중화 해야

우리 차가 위축되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면 류 회장은 외형이 집착하지 않고 내실을 취하는 차문화 진흥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차와 관련된 행사나 축제를 진행하는데 연간 300억이라는 거금이 낭비되는 작태를 꼬집었다. 대신 농촌진흥청 등 연구기관에 소정의 연구비를 지급하고 의뢰해서 국산과 외래종을 개량한 맛과 품질의 경쟁력을 갖춘 차가 대중에게 선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사례로 류 회장은 전통차를 현대화 시켜 프랜차이즈에 성공한 대만의 식품음료기업 ‘공차(貢茶)’를 들었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류 회장의 다도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조만간 차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 담은 수필이 ‘차 한잔의 인문학’이란 제목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류 회장은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다인으로 자하 신위(紫霞 申緯: 1769~1847)를 꼽았다. 신위의 다시를 한 수 적으면서 장을 마무리 한다. 반평생 스승 없이 홀로 우리 다학을 발굴해 온 다인에 대한 예우다.

(爇香久留 烹茶易熟 설향구류 팽차이숙)

향을 피우니 향이 오래도록 머물렀고, 차 끓이는 일이 익숙하여라

(供我文房 莫笑嵇癖 공아문방 막소혜벽)

나의 서재에 (모두) 갖추어 있으니, 혜강의 괴벽을 비웃지마라

『표암유고(豹菴遺稿)』 권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