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절기로는 바야흐로 대한(大寒)을 지나 입춘(立春)을 바라보는 때가 되었다. 올 겨울은  유난히 강추위가 기세를 떨치는 해였던 것 같다. 아무쪼록 올 강추위에 땅속이나 나무 틈 속에 월동하던 해충들이 모두 동사(凍死)해 올 농사에는 해를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마도 이 시기에 제주에서는 대한과 입춘사이 7일 정도를 뜻하는 신구간(新舊間)에 그동안 미뤄왔던 집안 정비나 행사를 치르고 있을 것이다. 이는 신구간이 액운이 끼지 않는 기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는 입춘과 우수(雨水)사이에 우리의 명절인 설날이 있다. 이렇게 집안행사나 설날과 같은 집안 대소사에는 아무래도 모임이 많아지는데 이러한 자리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술일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술, 그러나 우리 생활에 술이 없으면 무미건조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번에는 미생물의 최고 발효 작품인 술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고려바이오(주) 홍석일 이사(이학박사) cobio98@naver.com

술을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미생물이 필요하다
술은 알콜이 들어있는 모든 음료를 통칭하는 것으로 그 종류는 다양하다. 막걸리, 소주, 청주, 맥주, 양주, 포도주, 와인, 칵테일 그리고 한약재를 넣어 만든 술 등으로 우리네 삶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러한 술을 만드는데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미생물이 관여하고 있단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농민들이 술을 만드는 미생물은 효모(酵母: yeast: 이스트)라고들 많이 알고 있다. 그러나 효모는 술을 만드는 마지막 단계에서 알콜을 생산하는 곰팡이의 일종이다.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일이나 곡물의 전처리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쌀, 보리,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의 곡물들은 그 주성분이 녹말(전분: 綠末 : starch)이라고 하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녹말은 포도당(glucose)이 일렬로 길게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물질이다. 즉 수 만개의 포도당이 손에 손을 꼭 붙잡고 연결되어 있는 중합체를 녹말이라고 하는 것이다.
술이 만들어 지기 위한 첫 번째 작업으로 반드시 녹말을 분해하여야 한다. 즉, 녹말을 이루고 있던 수많은 포도당들을 하나씩 하나씩 떨어뜨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당화(糖化: saccharification)라고 한다. 당화는 생물학적 당화와 생화학적 당화가 있는데 생물학적 당화는 미생물이 녹말을 분해하는 과정으로 누룩곰팡이(Aspergillus niger)가 그 역할을 한다. 누룩곰팡이가 녹말을 분해하는 효소를 분비하여 녹말을 이루고 있는 포도당들을 하나씩 쪼개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반면에 생화학적 당화는 밀이나 보리의 싹이 난 것을 말린 엿기름이 그 역할을 한다. 엿기름의 싹에 녹말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포도당을 만드는 녹말분해효소
며칠 후에 있을 설날 명절 때면 집에서 어머니가 정성들여 담궈 놓으신 달짝지근하면서 시원한 감주 한 사발 마시는 것도 나름 요맘때만의 운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감주를 만들 때 엿기름을 사용하는 이유는 바로 엿기름의 싹에 강력한 녹말 분해 효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엿기름을 미지근한 물에 담궈 놓으면 싹에 있던 녹말 분해 효소가 물에 녹아 나온다. 엿기름이 담겨있던 물에는 녹말분해효소가 녹아 나온다. 이때 일정시간 후에 체로 쳐서 걸러진 여액을 감주를 만드는데 효소액으로 사용한다. 효소액을 쌀과 섞어 30℃ 정도로 온도를 유지시켜 주면 쌀이 효소와 반응하여 포도당으로 분해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반응을 끝내기 위해서는 온도를 올려서 물을 한번만 펄펄 끊이면 효소 반응이 정지된다. 효소는 열에 대단히 민감하기 때문에 고온에서는 효소가 파괴되어 녹말을 더 이상 분해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렇게 엿기름의 녹말 분해 효소에 의해 쌀(녹말)이 삭아지면서 단맛을 내는 포도당으로 변하는 것이다.   
쌀이나 감자, 고구마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녹말은 아밀라제(amylase: 녹말 분해 효소)라고 하는 효소에 의해서만 포도당으로 분해가 된다. 대표적인 아밀라제는 우리 입안에 고여 있는 침이다. 녹말로 이루어져 있는 김이 솔솔 나는 흰쌀밥을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처음에는 단맛이 나질 않지만 밥을 천천히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새롭게 느껴지는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흰쌀밥을 구성하고 있던 녹말이 녹말 분해 효소인 침에 의해 분해가 되어 포도당이 되었다는 증거인 것이다. 중국요리인 자장면을 먹다보면 어느새 없던 국물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 또한 침 속에 들어있는 아밀라제에 의해 자장면 속에 들어 있던 녹말이 녹아서 생긴 것이다. 녹말은 물에 녹지도 않고 아무런 맛도 느낄 수가 없는 물질이다. 그러나 녹말 분해 효소에 의해 포도당으로 분해되면 단맛을 낸다. 설탕이나 엿, 과일 등에 단맛을 내는 물질이 포도당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일이나 음식에 단맛을 내는 것은 포도당이 2개 붙어있는 수크로스(sucrose), 락토스(lactose) 같은 물질들 때문이다.

발효란 효모가 포도당을 알콜로 변화시키는 과정
이렇게 포도당으로 분해되어지는 당화과정이 끝나면 그 다음에 효모가 역할을 이어받게 된다. 효모는 포도당을 더 작은 물질로 분해해서 알콜로 만들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술을 만드는 대표적인 효모로는 Saccharomyces cerevisiae(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에)가 있고 그 외에 덴마크의 유명한 맥주를 만드는 효모의 이름은 Saccharomyces carlsbergensis(사카로마이세스 칼스버겐시스)인데, 맥주 상표명을 미생물의 이름에서 따온 듯 하다. 그러나 효모도 공기를 많이 공급해주면 포도당을 알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데 다 써버린다. 즉, 공기가 풍부하면 효모는 포도당을 이용해서 술을 안 만들고 자기 몸에서 필요한 에너지인 ATP를 만드는데만 사용한다는 것이다. ATP는 Adenosine Tri Phosphate의 약자로서 모든 생물체 내 에너지원이다. 자동차는 휘발유가 있어야 움직이듯이 모든 생물체는 세포내에 ATP가 있어야 활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효모가 호기적 조건에서는 술을 안 만들기 때문에 술을 만들 때 뚜껑을 꽁꽁 묵어서 공기 공급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것이다.
효모에 의해서 포도당이 알콜로 변하는 과정을 발효(醱酵: Fermentation)라고 한다. 효모에 의해 포도당이 알콜로 변하면 우리가 마실 수 있는 술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집에서 포도주를 담글 때 포도를 넣고 설탕을 거의 포도와 같은 양을 넣는다. 이렇게 3~4개월이 지나면 진한 포도향과 함께 달짝지근하고 먹기 좋은 맛있는 포도주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알콜을 만드는 효모를 굳이 넣어주지 않아도 알콜 발효가 일어나 포도주가 만들어지는 것은 왜 그럴까?
포도의 표면에는 야생효모, 즉 자연속에 저절로 존재하는 효모가 살고 있다. 종종 토양 미생물을 분석하다 보면 포도밭 토양에는 효모가 높은 밀도로 많이 발견된다. 이 야생효모가 포도를 발효시켜 포도주를 만드는데 야생효모에 의한 발효는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하므로 상품으로 판매할 수는 없다. 술을 만들 때마다 맛이 다르고 알콜 도수도 틀리면 상품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명한 술 제조 회사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미생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정한 술 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알콜 도수가 가진 비밀
또한 야생효모는 알콜에 대한 내성이 약하다. 설명하자면 효모가 포도당을 분해하여 알콜을 생산해 내는데 알콜이란 엄밀히 정의할 때 유기용매라 할 수 있다. 물에는 잘 안 녹는 물질이 알콜에는 녹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현상들은 알콜이 유기용매이기 때문이다. 유기용매인 알콜의 농도가 12%에 접촉되면 야생효모는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활동을 중지하거나 죽어버린다. 자기가 생산한 알콜 때문에 자기가 죽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자기제어(自己制御: self inhibition)하고 한다. 일반적으로 효모는 알콜에 대한 내성이 높지 않기에 효모를 이용해 발효시킨 술들의 알콜 농도가 12~14%를 넘지 않는다. 효모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알콜 도수가 최고 15%인 것이다. 알콜 도수가 15%가 넘는 독한 술들은 효모가 만들어낸 알콜을 농축시켜 만든 것이다. 즉 증류주인 것인데 증류주를 만드는 원리는 알콜의 끓는 온도가 물보다 낮은 것에 착안해 만든 것이다. 효모가 곡물이나 과일을 발효하여 만든 액에 열을 가하여 끓이면 물이 끓기 전에 알콜이 먼저 끓어 증발된다. 이렇게 증발된 알콜을 따로 모아 소주나 양주와 같은 술을 만드는 알콜 원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사용한 알콜 원료의 생산 방법에 따라 저가의 대중적인 술이 만들어지거나 값비싼 술이 만들어 지고 있다.

지금까지 술이 미생물에 의해 만들어지는 과정과 원리를 알아보았다. 술을 만드는 데에도 하나의 미생물이 아닌 여러 미생물이 서로 협조를 하여 만들어 지는 것을 이해하게 됐을 것이라 믿는다. 요즘 농가에서 다양한 농가 부산물을 이용해 미생물 발효 액비를 제조, 농작물의 천연 영양제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농가에서 유기물을 직접 발효해 자가 영양제를 제조할 때 투입되는 재료에 따라 작용하는 미생물이 시기별로 달라진다. 농가에서 발효 비료를 생산할 때도 술을 만들 때와 같이 한 두 가지 미생물이 아닌 다양한 미생물을 이용해야만 품질 좋은 발효 비료를 얻을 수 있다. 자연계에는 다양한 미생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기별로 필요한 미생물이 시기적절할 때에 적당한 역할을 해주고 있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