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미생물에 대한 글을 다시 기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를 드리고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성원을 해주신 분들께 지면으로나마 고마움을 전합니다. 아무쪼록 올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복되고 웃음가득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구제역은 바이러스다
지난해 이맘때 구제역(口蹄疫)이 기승을 부려 나라 전체가 근심에 쌓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구제역은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들한테만 감염되는 질병인데 발굽이나 입주위에 물집이 생기고, 체온이 상승하며, 식욕이 떨어지는 증상을 보이면서 앓다가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아주 무서운 제1종 가축전염병이다. 요즘은 구제역을 FMD라고도 부르는데 Foot  Mouth Disease의 약자로서 발(Foot)과 입(Mouth)에 발생하는 질병(Disease)이라는 뜻이다. 구제역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이름도 복잡한데 Picornaviridae Aphthovirus(피코나비리데 압토바이러스)라고 부른다. 크기는 0.025㎛(마이크로미터) 정도 되는데, 1㎛라는 단위는 1㎝(센티미터)를 10,000배로 쪼갠 아주 작은 길이이다. 그러니 구제역 바이러스는 1㎝를 250,000배 쪼갠 것 중의 한 눈금이니 얼마나 작은지 상상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이렇게 작으니 공기 중으로 전파되어 사방팔방 다 헤집고 다니면서 질병을 발생시켜 우리 농가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바이러스가 어떠한 놈이길래 방제도 어렵고, 우리들을 괴롭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곰팡이·세균·바이러스의 차이점
일반적으로 미생물을 이야기할 때 곰팡이와 세균 그리고 바이러스로 분류한다. 분류 기준은 유전물질인 DNA를 어떻게 보관하고 있는가에 따라 정해진다. DNA를 우리 사람으로 비유 한다면 뇌(腦, Brain)에 해당되는 부위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우리 사람의 판단이나 행동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모두 뇌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뇌는 일종의 사령부(Control tower)와 같은 역할을 하며 우리 모든 행동거지를 제어하고 있다. 뇌는 다른 어떤 인체 기관보다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단단한 해골(骸骨: 머리보호뼈)이 보호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DNA(유전물질)는 모든 생물의 세포에는 다 들어있는 뇌와 같은 물질인데 이 DNA를 어떻게 보관하는가에 따라서 곰팡이와 세균으로 구분한다. DNA는 소중한 물질이기 때문에 핵(核, nucleus) 이라고 하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서 잘 보관하는 것이 곰팡이고, DNA를 일반 세포기관과 구분 없이 아무렇게나 보관하는 것이 세균이다. 따라서 곰팡이가 세균보다는 좀 더 똑똑한 녀석이라고 보면 된다. 방선균이라고 하는 미생물은 겉모습이 곰팡이처럼 생겼다. 그런데 이 녀석은 DNA를 곰팡이처럼 핵에 따로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세포 소기관과 함께 아무렇게나 방치하기 때문에 세균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제 곰팡이와 세균의 차이를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면 바이러스라는 놈은 어떤 구조를 지니고 있을까?
바이러스는 단지 DNA만 가지고 있는 단순한 미생물이다. DNA만을 가지고 있으니까 정상적인 활동은 전혀 못하는, 생명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 녀석이다. 우리 사람들 사이에서 뇌가 껍질에 싸여서 유유히 떠다닌다고 한번 상상해보자. 이것을 온전한 생명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러나 바이러스는 바이러스로서 살아가는 독특한 방식이 있습니다. 바로 다른 생명체에 기생하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는 절대로 증식이 불가능하지만 지나가는 만만한 세균이나 면역력이 떨어진 동물 세포 속으로 들어가 기생을 할 때에는 증식이 가능하다. 바이러스는 DNA만 가지고 있는 불완전 생명체이기 때문에 다른 생물체에 착 달라붙어서 자기의 DNA를 달라 붙은 생명체 안으로 집어 넣는다. 그러면 바이러스의 DNA가 상대 생명체로 들어가 상대방의 사령부를 파괴하고 자기가 주인노릇을 한다. 이때 바이러스로부터 공격당한 녀석을 숙주세포(宿主細胞, Host cell)라고 하고 점령당한 숙죽세포는 바이러스의 DNA가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게 된다.
그렇다면 바이러스가 숙주세포를 위해 유익한 일을 할까? 절대로 그렇지는 않다. 바이러스에게 있어서 숙주세포 하나 잡은 것은 자기의 2세들을 증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므로 숙주세포가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식들을 만들고 이러한 작업은 숙주세포가 죽어야만 끝난다. 즉, 바이러스는 숟가락만 들고 다니는 무자비하고 얌체같은 불완전 생명체라고 보면 거의 맞다. 다른 생명체가 차려놓은 밥상에 염치없이 들어가 게걸스럽게 모두 다 먹어치우는 그런 파렴치한(破廉恥漢)이다.

아직까지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대신 평상시 면역력을 키워놓으면 바이러스는 쉽게 들어오지 못한다. 바이러스는 약한 숙주만 골라서 공격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바이러스에게는 약한 숙주만을 귀신같이 알아볼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 있나보다. 과학이 발달한 요즘, 역으로 바이러스의 능력을 활용하여 인간을 위한 유용한 곳에 사용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