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위기 시대에 요구되는 공동체운동은 공동체 개별 단위에서 생산 및 소비활동을 통해 생태적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소극적 의미의 역할을 넘어서 대안적인 지역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만들어가는 적극적인 역할자로서 발전하고 있다. 오늘날 생태적 공동체운동은 지역 현장에서 서로 협력해 순환형 지역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월간 친환경에서는 생태적 공동체운동의 방향과 지역의 선도적인 유기농 공동체를 소개한다.

- 자료출처: 한살림, 생태적 공동체운동의 의미와 역할 및 과제/정규호, 화천군농업기술센터

1. 생태적 공동체운동의 의미와 역할 재조명

공동체운동이란 공동체적 가치나 삶의 원리를 일정한 영역 또는 공간 단위에서 직접 실현하고자 하는 의도적이고 집합적인 노력을 말한다. 따라서 시대적 요구와 여건, 사회문화적 맥락과 가치 등에 따라 공동체운동의 유형과 역할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① 공동체운동의 흐름에 대한 진단

공동체운동은 18~19세기를 거치면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이 만들어낸 열악한 노동조건 및 생활환경 문제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등장했다. 특히 1960년대 들어서는 자본주의 고도성장 과정을 통해 물질적 부를 축적해가던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현대 산업사회의 거대한 도시문명체계와 위계적인 사회구조, 물질중심주의 등이 팽배한 현실을 비판하면서 공동체운동을 통해 대안적인 사회를 모색하려는 노력이 나타났다.

하지만 사회개혁가들이 중심이 되어 소규모 자립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초기의 노력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대 체제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계를 보였듯이, 20세기 중반에 나타났던 공동체적 실험 역시 경기 침체와 신자유주의적 경쟁체제의 강화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공동체 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으로 민간 주체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운동의 활력이 제도적 틀 속으로 포섭되는 모습도 나타났다. 따라서 기존의 많은 공동체운동이 기대와는 달리 ‘운동’으로서 실질적인 역할과 영향력 측면에서 한계를 보여주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즉, 공동체 건설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운동’적 역할은 고사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문명을 거부하는 시대착오적인 시도라는 편견이 공동체운동을 따라다녔다.

우리나라에서 공동체운동은 1960년대 들어 개발국가가 주도하는 근대화과정에서 농촌의 붕괴와 도시화의 부작용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 당시 농촌지역은 저곡가 정책으로 인한 농촌 경제의 붕괴와 식량증산을 목적으로 한 기계화와 화학농법의 도입으로 생태계가 급속히 파괴되고 있었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민운동, 협동조합운동, 유기농업운동 등이 등장했다. 또한 저소득 및 빈민계층이 모여 살던 도시 지역이 정부의 불량주택 재개발사업으로 철거되면서 주거생존권 확보를 위한 운동들이 등장했다.

② 생태적 공동체운동의 등장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한편으로는 제도 영역으로 포섭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립된 채 파편화되어가던 공동체운동이 1990년대 들어 생태위기가 지구적 차원의 문제로 본격화되면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간의 공존 및 공생의 관계를 모색해온 공동체운동이 생태위기 시대에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으로 평가받으면서 등장한 생태적 공동체운동은 삶의 터전의 파괴와 인간 사회의 공동체성 파괴가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현대사회체제를 공동체적 원리를 통해 생태적으로 재편하고 나아가 미래 세대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책임까지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태적 공동체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1987년 민주화 국면을 거치면서 사회 민주화의 확대와 시민사회의 성장을 통해 시민의 다양한 가치와 삶의 질에 대한 요구를 반영하는 공동체운동이 등장했다. 도농직거래운동, 생활협동조합운동 등 환경 및 생명가치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운동이 다양한 형태로 출현했으며, 한편에서는 쓰레기·소음·교육환경 등 도시 속 생활상의 이슈를 중심으로 생활권 보호 차원에서 주민자치운동, 마을만들기운동, 아파트공동체운동 등이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등장했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지구적인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는 생태 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치관과 생활양식의 실질적인 변화를 매개하고 촉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생태적 공동체운동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왔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경제의 세계화로 인한 충격과 부작용을 극복하고 경제구조의 생태적 전환을 모색하기 위한 방안으로 생태적 공동체운동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생태적 공동체운동과 관련하여 이론과 실천 영역에서 지금까지 진행된 모습을 보면 공동체 활동 개별 단위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 전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비전과 전략이 매우 부족하며, 각 유형의 공동체들 간의 유기적인 협력의 필요성과 그 방안을 다룬 연구도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2. 새로운 전망과 과제로서 순환형 지역사회 만들기

순환형 지역사회 만들기의 공동체적 의미와 방향

경제적 획일화와 생태적 다양성의 서로 다른 논리가 치열하게 경합하고 충돌하는 지역 현장에서 생태적 공동체운동은 순환형 지역사회만들기에 대한 전망을 새롭게 세워나갈 필요가 있다. 이는 화폐를 매개로 한 교환 중심의 경제체제가 생산과 소비를 공간적으로 분리시킨 채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단기적 이윤을 중심으로 한 토지소유 및 이용방식이 물질순환의 흐름을 깨트리면서 자연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깊은 반성 속에서 나온 것이다.

순환형 지역사회는 자연 생태계의 순환원리를 지역공동체운동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다. 즉 생태학에서 공동체의 원래 개념 자체가 일정한 장소 또는 서식 환경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공존·공생하는 여러 생물 종의 모임, 즉 군집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자연 생태계에서 공동체를 구성하는 순환체계를 생태위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지역 차원에서 재현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물질과 에너지, 정보 등이 지역차원에서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유기적으로 소통하고 순환하는 지역사회 만들기는 ‘지속가능성 딜레마’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속 가능성 담론이 선형적 시간관을 바탕으로 현재의 지배적인 가치와 생산양식을 정당화하는데 활용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순환에 대한 생태학적 사고를 지역발전의 대안적인 담론으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순환형 지역사회 만들기는 그동안 지역차원에서 진행되어오던 기존의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공동체운동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물질과 에너지, 정보, 권력, 인적자원 등 다양한 요소를 지역 차원에서 순환시키는 과제는 의료, 복지, 환경, 교육, 문화, 정치, 대안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오던 공동체적 활동을 지역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재조직할 때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동체운동의 지속 가능성과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분리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태적 공동체운동의 전략으로 순환형 지역사회 만들기는 그동안 경제중심의 하향식 물리적 공간개발에 치우쳐온 기존의 지역발전양식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지역’은 국가 총량적 경제성장 체제를 지원하는 전략적 대상이자 수단으로 취급되었으며, 그 결과 지역 공동체는 급속히 해체되고 자연 생태계는 파괴되었으며 지역의 내발적 발전 역량은 상실되어왔다. 물론 정부 차원의 노력이 없진 않았으나 생태적 측면과 공동체적 측면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의도했던 결과를 충분히 얻지 못했고 오히려 부작용도 나타났다. 지난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지역 활성화를 위한 균형발전 정책의 경우도 중앙정부의 자원할당을 둘러싼 지방 차원의 경쟁적 공간개발 움직임을 자극함으로써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가치갈등이 지역사회 깊숙이 확산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따라서 경제의 세계화와 생태 위기의 지구화 흐름 속에서 지역의 불확실한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지역발전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한 공동체적 전략으로서 순환형 지역사회 만들기를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3. 사례로 살펴보는 유기농 공동체

① 아산지역: 생산자 공동체가 중심이 된 자원 순환형 지역사회 만들기

아산지역은 30여 년 전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청년이 중심이 되어 유기농업 운동을 시작한 이래 한살림 아산생산자연합회, 푸른들영농조합법인, 소비자생협 등으로 계속 분화하며 발전해오고 있으며, 그 성과를 토대로 지역 내 단체와 행정, 대학 등이 협력체계를 구축해 아산지역을 자원순환형 지역사회르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진행해 오고 있다.

아산지역은 1975년에 음봉면 산정리에서 청년 생산자 40여 명이 뜻을 모아 유기농업을 시작한 곳으로, 1980년부터 생산된 무농약 쌀을 서울에 있는 소비자와 직거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5년 정도 지속하던 직거래 활동이 어려움을 맞게 되었으나, 1987년 한 살림과 인연을 맺으면서 친환경농업에 기반을 둔 생산자 공동체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산정리마을 뿐 아니라 인근 신봉리 마을의 젊은 채소농가들까지 결합해 ‘한살림 아산시 생산자연합회’를 만들게 되었다.

이후 생산자연합회가 구심이 되어 활동을 전개해 나가면서 생산자 회원이 늘어나자 활동 영역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생산자가 생산한 농산물의 가공과 유통을 위해 회원 출자로 ‘푸른들 영농조합법인’을 만들고, 여기서 식품가공공장을 설립해 두부, 콩나물, 두유 등 다양한 가공품을 생산하게 되었다. 또한 생산자연합회에 함께 있던 ‘한살림 천안·아산 소비자 생협’이 규모가 커지면서 독립체로 분화되어 나갔다.

이러한 성과를 토대로 생산자연합회는 2000년 1월부터 아산에서 지역농업을 선포하고 순환형 지역사회를 향한 기반을 구체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즉, 아산지역은 생산자연합회를 중심으로 농가에서 재배된 콩으로 푸른들 식품가공공장에서 두부를 만들고, 이 때 나온 비지 등의 부산물을 채소농가의 유기질비료와 축산농가의 사료로 사용하고, 축산농가의 분뇨를 다시 경종농가에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지역차원의 물질순환체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두부공장을 운영할 당시 어려움도 많았다. 두부 생산에 대한 아무런 지식과 기술도 없이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 만든 공장이었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우리 땅에서 키운 콩으로 정직하게 만든 두부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줬다. ‘건강한 두부’라는 소비자의 입소문을 타면서 생산량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현재 하루 8,000모 가량의 두부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는 한살림두부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해까지 한살림에서 판매되는 모든 두부를 이곳에서 생산했지만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올해부터 일부 물량을 다른 공장으로 넘긴 것이다.

푸른들조합에서 두부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콩은 연간 500여t. 아산 지역에서 생산되는 80여t 전량을 사용하고도 모자라 다른 지역 한살림 생산자와 농협을 통해 수매한다. 친환경 두부이기 때문에 원산지와 콩의 상태를 철저하게 검증한다. 보관 역시 마찬가지다. 콩은 상온의 일반 창고에 두면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저온저장고에서 섭씨 5도를 항상 유지한다.

푸른들조합의 두부공장은 이달 신식 설비를 갖춘 공장으로 이전한다. 철저한 위생과 납품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무소포제 설비와 천연응고제 사용을 위한 설비를 마련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또한 주목할 부분은 푸른들 영농조합법인에서 매년 발생하는 잉여금을 토대로 지역 내 소외된 지역과 학교급식활동 등에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생산자연합회가 협동조합의 원리를 바탕으로 배당금을 분배하는데서 비롯된다. 푸른들영농조합법인에 대해 회원들이 자기 매출액의 1% 정도씩을 약정한 출자금이 약 6억원 정도인데, 매년 발생하는 잉여금 중 일부를 아산의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지원하고 있다. 생산자연합회와 아산시, 농협, 지역내 보육시설 및 초·중·고등학교 등이 서로 협력해 지역 전체 차원에서 유기농 학교급식 체계를 만들고 있는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② 괴산지역: 지역 소공동체의 연대를 통한 순환형 지역사회 만들기

괴산지역은 1970~1980년대에 농민의 경제적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했던 농민운동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1990년대 들어 조직 결속력을 높여 공동출하와 농협 개혁 등의 실천사업을 진행해왔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생존자체가 우선적인 과제였던 초기 단계를 넘어 귀농과 토착농을 중심으로 친환경농업에 기반을 둔 지역만들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괴산지역에는 눈비산마을, 솔뫼공동체, 흙살림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공동체적 실험이 있어왔는데, 이들이 현재 지역 전체 자원에서 공동체적 발전 전망을 모색하는데 있어 활동 경험과 역량을 모아내고 소통하는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눈비산마을의 경우 농촌과 농업이 당면한 현실을 일찍이 자각하고 협동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뜻을 모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1976년에 만들어졌다. 이곳은 두레식품과 흙살림의 모태 역할을 했으며, 지금은 어린이 및 청소년 생명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솔뫼공동체는 개별로 농사를 짓되 공동체적인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수익금 일부를 지역을 위해 환원하고 있다. (사)흙살림은 우리나라 최초의 친환경농산물인증기관으로 친환경농업을 위한 전문인력 교육과 기술지원 활동을 통해 농촌지역을 기반으로 한 순환형 지역사회 만들기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괴산 지역 차원에서 ‘학교급식국민운동’을 통해 유기농 운동과 학교를 연계시키고 지역사회와 행정의 관심을 이끌어 냈을 뿐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개별적으로 진행되어오던 지역운동을 지역 전체 차원에서 소통하고 연대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2006년 5월 충북에서는 처음으로 학교급식 조례 제정을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지역에서 생산되는 친환경농산물의 안정적인 수급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2007년의 경우 지역 내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30개 학교에 3,000명 규모의 친환경 우수농산물 급식을 실시했으며, 앞으로 친환경급식농산물의 품목을 늘리고 무상급식을 확대하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괴산에는 오랜 기간 지역에서 활동해온 경험을 가진 리더들이 다수 있으며, 다양한 영역에서 각자의 정체성과 자립적 기반을 만들어온 공동체적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귀농자와 토착농민과의 연대가 비교적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귀농자들이 지역사회의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는데 새로운 활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현재 개인 및 단체별로 당면한 현실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우선적으로 집중했던 기존의 활동수준을 넘어서 지역 전체의 문제와 비전을 높고 실천과제를 함께 모색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③ 화천지역: 나눔으로 시작하는 친환경 공동체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씨가 한 산골마을에 그의 친필 사인과 더불어 CD를 선물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알고 보니 그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고객이었던 것. 기름진 옥토가 많아 농사일에 품을 팔면 꼭 쌀로 품삯을 받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된 토고미(土雇米)마을 얘기다.

토고미마을 하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우렁이를 이용해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 쌀이다. 이 외에도 마을 주민들은 감자, 고구마, 콩, 고추, 토종꿀 등의 농사를 짓는다. 요모조모 살펴보면 사실 여느 농촌마을과 특별히 달라 보이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도시민들은 유독 토고미마을과 이곳에서 생산된 농산물에 끈끈한 정을 느낀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실시해온 ‘나눔의 농사’ 때문이다. 도시민들은 농사를 직접 지을 수는 없지만 우렁이를 보내주면 우렁이가 논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농민은 이를 잘 관리하여 우렁이 값을 추석에 유기농 햅쌀로 보내준다. 보통의 농산물이 일회성 및 익명으로 거래되는 반면, 토고미에서 생산되는 것들은 내가 직접 지은 농사물 같다. 토고미마을에의 농산물은 단순한 거래 품목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도·농 교류를 위해 폐교된 학교를 임대해 만든 토고미 자연학교에서는 자연체험, 농촌체험, 계절별 체험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운영하고 있다. 모두 도시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자연과의 교감을 누릴 수 있는 구성이다. 감자캐기, 모심기, 떡메치기, 두부만들기 등의 체험을 하노라면 아이는 물론 어른들까지 동심의 미소를 짓게 만든다. 청정한 자연 속을 누비다 해가 저물면 밤하늘의 별들을 세며 풀벌레가 부르는 자장가에 스르르 잠이 든다.

고향, 그곳을 떠올리면 언제나 마음의 위로가 찾아오지 않던가. 토고미마을은 기꺼이 콘크리트 빌딩에 사는 도시민들에게 제2의 고향이 되어준다. 이 안에 머무는 것 자체가 힐링의 시간이다.

④ 홍성지역: 교육의 힘을 바탕으로 한 순환형 지역사회 만들기

충남 홍성군 홍동면 지역은 국내외에서 연간 1만 5,000여 명의 사람들이 찾아올 만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기농 생산지로서, 오랜 기간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공동체 원리를 지역사회에 실현해오고 있다. 지역주민의 노력에 힘입어 2004년에는 홍동면 문당리 지역이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대상지구로 선정되어 2006년까지 정부에서 70억원을 지원받아 전국 최대규모의 ‘친환경 오리농법 쌀단지’를 조성해왔다.

홍동지역이 유기농업을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으로 당시 정부는 화학농법에 기반을 둔 농업 근대화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었다. 풀무학교 졸업생과 정농회 회원이 중심이 되어 선도적으로 출발한 유기농업 운동은 1993년 오리농법을 도입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1995년 홍동면 문당리에서 처음 시작된 오리농법으로 생산된 쌀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무농약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이후 오리농법이 홍동면 지역 전체로 확대되기 시작했으며, 생산량 증가에 따른 판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주민이 직접 나서서 직거래 등 판매망을 개척하고, ‘오리방사 축제’처럼 도시 소비자가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를 높이고자 노력했다.

홍동지역에서 유기농 생산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공동체적 실험을 해 온 밑바탕에는 ‘교육’의 힘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특히 1958년에 개교한 우리나라 최초의 농업 대안학교인 ‘풀무학교’는 지역 전체로 열린 공동체를 추구해온 설립 정신에 맞게 많은 졸업생을 배출했고, 이들이 지경의 다양한 영역에서 환경농업과 공동체운동을 이끌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풀무학교는 풀무신용협동조합, 풀무생산자협동조합, 홍성신문, 갓골어린이집 같은 지역공동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조직이 탄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지역사회에서 서민금고 역할을 담당해온 풀무신용협동조합은 1961년에 풀무학교 교사와 졸업생 5명이 시작한 신협운동에서 출발한 것으로, 1970년 지역주민을 포함한 18명이 4,500만원을 모아 창립한 이래 2,800여 명의 주민 조합원과 180억원의 자산규모로 성장했다. 또한 풀무생산자조합의 경우 1958년 풀무학교 개교와 함께 학교 내에 학생소비조합을 만들어 운영해 오던 것을 1980년에 지역주민들이 함께 해 풀무소비조합으로 만들었으며, 이후 풀무생산자조합으로 바뀌어 성장하고 있다.

갓골 어린지입은 1980년에 주민들 스스로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12년간 운영해오다가 1992년 홍성군의 지원을 받는 유아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으며, 홍성여성농업인센터 또한 2002년에 여성농업인의 활동 공간으로 허가를 받아 운영하면서 미취학 어린이 탁아와 독서 및 문화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홍동지역은 오랜 기간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인적·물적으로 토대를 만들어온 풀무학교를 기반으로 다양한 유형의 지역 생산자 공동체가 서로 긴밀히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힘을 바탕으로 지역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해 오고 있다.

그 예로 2000년에는 문당리에 지역주민이 힘을 모아 환경농업교육관과 농촌생활유물관, 마을정보센터 등을 만들어 이곳을 지역주민에 대한 교육 및 문화공간은 물론 외부 방문객 교육장소로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마을 주민을 위한 찜질방을 만들면서 정미소에서 나오는 왕겨를 사용하는 보일러를 설치함으로써 연료비 절감은 물론 지역 자원의 이용률을 높였으며, 무인판매대를 설치해 주민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등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 김중호 회장이 말하는 문당마을

지역에 맞는 유기농법 개척

올해 초 문당 마을 3대 회장으로 선출된 김중호 회장은 일찌감치 ‘제2의 주형로’로 인정받았다. 환경농업 마을 추진 당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몸과 마음을 쏟아낸 인재였기 때문이다. 문당리 토박이인 그는 1만 2,000평에서 벼를 비롯해 토마토, 생강, 고추 등 모두 유기농으로 재배 중이다. 순환농업을 위해 직접 소도 기르며 20년째 유기농을 이어가는 중이다.

김 회장은 “그동안 본이 되어 오신 두 분의 선배에 이어 회장직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이 앞선다”며 “그러나 청년들과 의기투합하여 보다 역동적인 마을을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다.

오리농법의 발원지로 불리는 문당 마을의 대표작물은 익히 알려진 대로 벼다. 모든 농가가 유기농으로 재배 중인 이곳은 조류 독감 이후 오리농법은 90% 이상 사라졌지만 오리농법 발원지를 상징하는 차원에서 10% 농가는 여전히 오리를 이용해 재배하고 있었다.

매년 논 농사를 하는 농부는 제초와의 전쟁을 치른다. 그러나 문당 마을은 쉽고도 간단하게 제초는 물론 병충해까지 해결한다. 비법은 바로 타 지역보다 약 20일 가량 늦은 모내기에 있다.

“모내기는 보통 날짜에 따라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기온에 따라 정해요. 이 지역은 6월 중순이 가장 알맞습니다. 모내기를 조금 늦추면 제초 효과는 물론 병충해에도 강해지거든요. 물론 수량이나 품질에도 차이는 없습니다.”

모내기를 늦추는 간단한 비법을 제시한 김 회장은 또 밀식 재배보다는 소식 재배를 하면서 미질 관리에도 나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방법과 우렁이 방사만으로 유기농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식생활 자급자족, 질 좋은 문화생활

문당 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식생활 자급자족이다. 직접 재배해 자급하거나 이웃이 재배한 작물들을 서로 나누며 먹거리를 만든다. 특히 따로 장을 볼 필요가 없다. 지천에 널려 있는 게 바로 음식 재료이기 때문이다. 물론 유기농으로 말이다.

“도시에서 먹는 질과 매우 다르죠. 그게 어쩌면 이 마을에 사는 분들이 얻는 가장 큰 혜택 아닐까요? 주민들은 모두 더불어 사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요. 서로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넘치는 부분은 또 나눠주고. 그렇다보니 누구하나 굶거나 소외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 같은 마을 분위기를 어떻게 알았는지 수년 전부터 이곳 마을과 홍성으로 이주해 오는 사람이 많다. 전국에서도 귀농·귀촌 문의는 하루에도 수도 없이 온다. 여전히 농촌 생활이 등한시되고 있지만 이곳만큼은 예외다.

이주해온 도시민들은 마을에 소속감을 갖기 위해 각각의 재능을 기부한다. 모두가 선생님이요 교육자가 되는 것이다. 마을이 주는 안정감을 누리는 대신 너나없이 자신의 재능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도시 사람들을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살기는 좋은 데 문화생활이 없어서 재미가 있을까’라고 말이죠. 그러나 그건 우려일 뿐입니다. 여기는 아기자기한 문화생활도 지천에 널려 있거든요.”

김 회장은 이 마을이 그저 깨끗한 환경, 질 좋은 먹거리로만 있는 곳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름대로 문화생활을 즐길 요소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영화관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영화 동아리가 있으며, 생활체육, 생태프로그램 시설, 음악과 악기, 건강, 유명 강사 초빙, 연극 및 공연 등 이곳 나름의 문화공간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김 회장은 시간이 없어서 다 못 즐길 정도라며 선입견을 벗어도 좋다고 말한다.

김 회장은 역동적인 마을을 꿈꾼다. 그것이 어르신들을 위한 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농업 노하우를 후배들과 귀농인들에게 적극 나누어 주며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 후배 양성이 곧 마을의 미래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유기농 공동체의 본질

김 회장은 문당 마을이 유기농업 특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다름 아닌 유통에서 찾았다.

“현재 마을에서 나오는 유기농산물은 전량 판매할 수 있도록 마련돼 있습니다. iCOOP생협과 홍동농협에서 수매해 주기 때문에 판로 걱정이 없는 거죠. 농민들은 오로지 농사만 잘 지으면 되지 않습니까? 사실 판로 걱정을 덜어주니 유기농 공동체는 절로 이뤄지는 것 같더라고요.”

사진10. 김 회장은 “농사의 주축이 되고 있는 20~40대 청년들과 힘을 모아 마을을 살리고 가꾸는 데 정진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 문당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

무항생제 한우로 순환농업 돕는다. 황청익 씨

문당 마을에서 농사짓던 부모님의 권유로 10년 전 귀농한 황청익 씨. 귀농하면서 그는 주위의 권유로 유기 한우를 시작했다. 귀농 전부터 유기농에 관심이 많았던 황 씨는 당시 전국에서 두 번째로 유기 한우 사육에 도전에 나선 것. 축산은 처음이었지만 농촌진흥청의 도움으로 유기 한우는 비교적 성공리에 마쳤다. 그러나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유기 사육에 한계를 느꼈다. 투자 대비 수입은 물론 몸이 무척 고됐기 때문이다. 홍성 한우를 기르는 이웃의 도움으로 무항생제 사육으로 방법을 바꾸었다. 적어도 문당 마을과 그 길을 같이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청결을 제1원칙을 삼은 그는 무항생제 한우에 온 힘을 쏟으며 농민과 상생을 이어갔다.

“10년째 소를 키우고 있지만 이곳만큼 좋은 환경이나 사람들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 단합도 잘되고 시골이지만 정보도 매우 빠르고요. 한우 시장이 매우 어려운 가운데 있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마을 특색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문당 마을에서 소만 키우는 농가는 황 씨가 유일하다. 원래 사육 농가가 20가구나 되었지만 송아지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입식(入殖)이 어려워진 탓이다. 그럼에도 황 씨는 문당 마을 표 한우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걸어간다. 황 씨는 우분을 모두 퇴비로 환원하여 유기농업의 일원이 되고 있다.

새로운 작목에 도전, 블루베리 농원 해마루 김평중 씨

김평중 씨도 귀농했다. 카톨릭대학교 병원에서 근무하던 김 씨는 정년 퇴직을 3년 앞두고 인생 2막에 돌입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농부다.

2008년 문당 마을 임야 2,000평을 사들여 블루베리 농장을 만들기 시작한 그는 사실 엔지니어 자격까지 갖춘 기술자였다. 땅을 구입한 후 평일은 병원 근무를 서고 주말을 이용해 살 집을 건축하고 밭을 일구며 묘목을 심는 퇴임 전까지 열정을 쏟아냈다. 밭을 구입한 그는 당시 인기 작물로 떠오르기 시작한 블루베리를 선택한 그는 문당 마을에서 유일하게 블루베리를 재배하는 주인공이 됐다.

김 씨가 문당 마을로 귀농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다름 아닌 ‘주형로’라는 사람 때문이다. 당시 오리 농법과 유기벼 농법으로 알려진 주형로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있는 곳이라면 괜찮겠다 싶어 땅을 구입했다. 마침 와보니 마을이 조용하고 매우 깨끗해 인상에 깊게 남았던 것. 특히 주형로 씨가 30대 초반에 농촌을 이끌어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마을 어르신들의 깨어 있는 사고가 맘에 들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해발 약 100m 고지의 경사진 산비탈을 개간하여 만든 블루베리 농장은 어느덧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김 씨는 재배 초년부터 갈등에 사로잡혔다.

“유기농이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비료를 사용하면 100만원이면 다 되는 것을 유기농을 하다보니 퇴비 800포, 유박 300포만도 600만원이나 듭니다. 비용은 비용대로 노동은 노동대로 들어서 처음에는 무척 애먹었지요.”

그러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그는 일단 끝까지 가보기로 결심했다. 재배 4년째인 지금은 오히려 유기농이 더 편해졌다. 유기농으로 재배하니 건강은 물론 땅의 지력도 좋아진데다 병해충까지 견딜 수 있는 저항성도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김 씨는 농약을 사용하는 것이 중독이듯이 유기농업도 중독이 된다고 한다. 한 번 유기농업에 발을 디딘 사람은 결코 다시 관행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고 못 박는다.

“어쩔 때는 유혹도 있어요. 나무가 말라가고 열매도 안 열릴 때 약 한번 치면 될 것 같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4년간 해온 유기농업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죠. 그래서 그냥 버팁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유혹은 우습지만 말이죠.”

귀농 전 일본 농업에서 알게 된 6차 산업을 실현하기 위해 블루베리 음료 등 가공도 시작한 그는 문당리 산(産) 블루베리 생과와 가공품을 전국으로 납품할 계획이다.

젊은 농부의 희망찬 미래 주하늬 씨

문당 마을에서 가장 젊은 농부인 주하늬 씨는 본격적으로 유기 농사를 시작한 지는 6년 전이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주 씨는 농사와 오랜 친분을 쌓았지만 모든 것을 도맡아서 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면서 부터다.

현재 벼, 고추, 생강 등을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는 그는 아침 5시면 눈이 떠진다. 경종 농업을 하는 그는 소에 먹이를 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식사 전까지는 논과 밭작물을 돌아보며 하루의 일과를 세워둔다. 요즘처럼 바쁜 농번기에는 조식을 하고나면 다시 논·밭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오후 작업까지 마치고 돌아오면 오후 8시는 기본이다. 아무리 젊다지만 빡빡한 일정에 힘들진 않을까 걱정이다.

“몸이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무엇보다 작물이 다양하다보니 각각 관리 시점이 달라서 손이 많이 가요. 그러나 몸이 힘든 거랑 농사가 힘든 거랑은 별개예요. 농사는 제 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해서인지 특별히 어려움은 없어요.”

주 씨는 어릴 적부터 당연히 농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일은 전혀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바로 그 좋아하는 농사를 하고 있어서 그는 매우 즐겁다고 한다.

마을 주민은 주 씨의 이 같은 마음가짐을 높이 사고 있다. 마을에 이러한 젊은이가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 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을 선택하길 바라고 있다. 그는 “오늘날 청년들이 협소한 시각을 벗어던지고 보다 넓고 긴 안목으로 직업을 선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 씨는 각각의 지역마다 젊은 패기로 가득한 농촌을 소망하고 있었다. 그런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농촌 전도사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한다.

“마을 회장을 맡은 김중호 회장님을 통해 많은 도전과 배움을 얻고 있어요. 우선은 저만의 농장을 만들기 위해 공부도 하고 경험도 더 쌓아갈 생각이에요.”

주 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젊은 농부들은 일부 논과 밭을 공동 재배하여 얻어진 소득을 마을 경관 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30℃를 훌쩍 넘는 강렬한 햇볕이 속에서도 고추 재배에 여념 없는 주하늬 씨는 문당 마을의 또 하나의 자랑이다.

문당리 대표 막걸리 만들다 김기수 씨

지난 2010년 11월 문당 마을에 유기농 쌀 막걸리 공장이 세워졌다. 국내 최대의 막걸리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가진 공장장 강윤권 씨는 우연히 이곳을 방문한 뒤 막걸리 제조에 안성맞춤임을 직감했다.

투자자를 선정하고 본격적으로 공장을 연 그는 도시민들에게 익숙한 맛은 그대로 보존하되 지방 특색에 맞는 맛 개발에 성공했다. 그래서 출시된 것이 ‘내포 생생걸리’다. 2011년 IFOAM 세계유기농대회에 공식만찬주로 선정될 정도로 히트를 쳤다. 강 씨는 문당 마을이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재배한 유기농 쌀(50%)과 청정 공기, 청정 물이 만나니 좋은 막걸 리가 만들어 질 수밖에요. 어느 덧 출시 1년 만에 홍성 지역을 대표하는 막걸리로 자리 잡은 것은 모두 문당 마을이 갖춘 천혜의 자연 때문이죠.”

마을 ‘옻샘터’에서 나오는 천연 생수를 사용하고 있는 내포 막걸리는 가끔 ‘어떤 물을 사용하느냐’라는 소비자들의 질문에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고 한다. 이유는 옻샘에서 나오는 생수라고 하면 ‘옻’이 옮는 줄 안다는 고객들 때문이다. 사실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말이다.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수입쌀이나 밀가루를 쓰지 않고 유기농 쌀을 고집하게 된 것은 문당 마을의 일원이기 때문이라는 전무이사 김기수 씨. 직원 3명의 월급을 주고 나면 마진은 거의 남지만 가격과 품질을 모두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내포 막걸리와 문당 마을은 서로 윈윈하는 중이다. 내포 막걸리가 알려지면서 문당 마을이 알려지거나, 문당 마을이 알려지면서 내포 막걸 리가 알려지는 등 이제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하루 4,000병(1병 750㎖)을 생산하는 내포 생막걸리는 문당 마을을 위한 프리미엄 곡주 개발도 추진 중에 있다. 마을을 대표하는 가공 산업으로 자리매김한 내포 막걸리 한잔이면 농번기의 무거운 짐도 한 순간에 덜어낼 수 있을 듯싶다.

⑤ 해외사례

요람에서 무덤까지 친환경/ 영국 최고의 유기농마을 토트네스

인구 8,500명의 영국의 작은 마을 토트네스(Totnes)는 1980년대 중반 광우병 사태로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 지역의 양털모직 산업이 몰락하면서 실업자가 넘쳐났고,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났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찾은 대안은 다시 ‘전통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양을 방목하면서 건강한 풀을 먹이고, 항생제를 끊어 스스로 면역력을 키우게 만들었다. 농작물 재배도 자연스럽게 유기농으로 돌아갔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건강한 먹을거리를 지역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광우병으로 받은 충격을 이겨낼 수 있었다.

토트네스 마을에서는 매달 세 번째 주 일요일 ‘좋은 먹거리 시장’이 열리고 식품가게에서는 유기농이 아닌 먹거리를 구하는 일이 더 힘들다고 한다. 영국 최고의 유기농먹거리 생산지로 자리 잡은 토트네스에서 2006년부터 새로운 시도가 시작되었다. 주민들은 마을회간에 모여서 “값싼 석유시대가 저물고, 이상 기후가 더욱 심각해지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토론에 토론을 거듭한 끝에 찾은 답은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전환마을’을 만들기 위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해 나가기로 했다.

토트네스에서는 몇 년전부터 ‘재생가능에너지 협동조합’이라는 에너지 기업을 만드는 일이 시작되었다. 주민들이 직접 출자해서 마을에 풍력발전기와 바이오가스 발전기를 설치하는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전환마을운동은 먹거리 생산에도 변화를 줬다. 가장 먼저 외부에 의존하는 먹거리 비중을 줄이기 위해 정원에 관상수 대신 먹거리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점심 샐러드 재료를 앞마당에서 뜯어서 준비하는 것이다. 집에서 직접 생산하기 때문에 식량파동이 와도 견딜 수 있도록 회복력을 갖는 일이다. 정원이 없는 사람은 ‘텃밭 짝짓기’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땅이 있는데 먹을거리를 가꿀 시간과 여유가 없는 사람과 땅이 없어 텃밭을 못 가꾸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시스템이다. 기후변화 위기에 농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토종종자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씨디씨스터즈(종자를 지키는 여성모임) 모임도 만들었다. 매년 2~3차례 토종 씨앗을 교환하고 보존, 재배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토트네스 시내 중심인 하이스트리트 양쪽으로 작은 상점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아주 오랜된 마을의 책방과 식료품점, 옷가게와 신발가게 등 이곳에서 장인들이 만드는 수공예품은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토트네스의 아이들은 유기농면제품을 판매하는 ‘그린파이버’의 기저귀를 사용하고, 유기농 음식을 먹고 자라나 생을 마감할 때는 수목장을 하는 ‘그린퓨즈’의 서비스를 활용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친환경이다.

토트네스 사람들은 제대로 준비만 하면 기후변화와 석유고갈의 위험에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주민들은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해답은 ‘지역’에서 찾고 있다. ‘탈 지역화’가 아니라 ‘재 지역화’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인 마을에서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먹거리와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는 방식이 지역의 삶과 경제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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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실에서 순환형 지역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생태적 공동체운동에 요구되는 역할은 다양하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지역 생태계와 생물자원의 지속가능성을 보호하고 물질과 에너지의 지역적 순환체계를 확보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지역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생산기술과 생산기반을 토대로 지역 자립적인 순환경제 체제를 구축해 지역 자산의 역외 유출을 최소화하고 고용창출 효과를 높여나가는 역할이 있어야 한다. 또한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우애와 협동의 원리를 통해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와 균형 있는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정보와 권력이 지역에서 원활하게 순환체계를 만드는 데도 생태적 공동체 운동이 역할을 해야 한다.

아산, 괴산, 홍성, 화천 등의 지역들은 공통적으로 생산자가 중심이 된 공동체적 실험을 통해 비교적 안정적인 물적 기반을 마련했으며, 이를 토대로 공동체운동의 영역을 확장·심화시켜 왔다. 시장 중심적 경쟁사회에서 지역 주민의 생계 기반을 안정시키는 일과 지역을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일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또한 사례 지역은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아래에서부터 가능성의 영역을 단계적으로 만들어가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1차산업에서 2차, 3차 산업의 영역으로 생산자 중심에서 지역사회 단체와 행정, 연구기관 등 다양한 주체가 결합하는 방식으로 공동체적활동 영역을 밑에서부터 단계적으로 확장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하향식 정책으로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얻고자 했던 기존의 지역 발전 사업의 한계를 역설적으로 확인시켜준다. 따라서 앞으로는 지역공동체에 대해 더 높은 책임성을 가지고 풀뿌리 차원에서부터 상향식으로 순환형 지역사회에 대한 전망을 구체화시켜 나가는 노력을 다양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

유기농 공동체 지역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극복해야 할 부분도 보이고 있다. 특히 지역사회의 경제적·사회적·생태적 구조를 한꺼번에 바꾸어버릴 수 있는 거대한 개발 압력이 향후 생태적 공동체운동의 중요한 과제로 작용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 생태적 유기농업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외부의 변화와 충격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지역 차원의 역량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